주님의 사랑이 머무는 곳
그 사랑으로 세상을 품는 공동체

그 뒤를 따르라!


그 뒤를 따르라

우리가 인생을 걸어가는 길 위에는 늘 요단강 같은 현실의 장벽이 놓여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가 있지만, 그 약속 사이에는 우리의 힘으로는 건널 수 없는 강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멈칫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나아갈 용기가 없어 서성일 때가 많습니다. 

여호수아도 그랬습니다. 두 정탐꾼이 돌아와 “하나님이 이미 여리고를 우리 손에 넘기셨다”고 보고했을 때, 그의 마음에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확신만으로 요단강을 건널 수는 없습니다. 약속만으로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따라 한 걸음을 내딛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믿음으로 이른 아침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 앞에 진을 쳤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알 수 없었습니다. 강을 어떻게 건널지도, 어떤 방법으로 길이 열릴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요단강 앞에서 3일을 유숙하며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렸습니다. 눈앞의 강물을 바라보며, 그는 아마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약속은 주셨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언약궤가 앞서 나아가면, 너희는 그 뒤를 따르라.” 단순하지만 강력한 말씀이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 즉 앞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가시면, 백성은 그 뒤를 따르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앞서가는 하나님이 길을 여시면, 없던 길도 생기고, 위험한 강물도 마른 땅이 됩니다. 

믿음은 우리가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신 길을 조용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기 위해 성경은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거룩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백성은 언약궤와 약 900미터의 간격을 두고 따라가야 했습니다. 가까이 사랑하되, 경외를 잃지 않는 거리. 하나님을 나와 동일한 존재로 만들지 않고, 거룩하신 분으로 인정하는 성도의 태도입니다. 둘째,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금그릇이든 질그릇이든,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마음에 마련하기 위해, 욕심을 비우고, 시선을 정결하게 하고, 마음의 중심을 다시 하나님께 맞추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어떤 기술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배를 만들 필요도 없었고, 강을 헤엄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해야 할 단 한 가지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 그뿐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서 만나는 요단강 같은 문제 앞에서 온갖 계획과 해결책을 찾기보다, 먼저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로,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따라가면, 인생의 강물도 마른 땅이 됩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을 따라 걸어갑시다. 한 걸음만 내딛어도 좋습니다. 그분이 앞서 가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합니다. 그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TOP